경주의 강진, 안전대비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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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6-09-18 19:03본문
추석 명절 이틀전 밤은 경주을 비롯 인근 언양·울산·부산·대구 일대 주민들은 '지진(地震)'이라는 천재지변이 발생해 '공포의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특히, 즐겁고 또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가 '여진(餘震)'이란 '2차 공포'에 시달리면서 불안의 연속이었다.
일본 등 남의 나라의 일로만 여겼던 그 지진이 한반도 남부를 흔든다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핵 폭탄의 50 배 이상 위력을 가진 지진이 실제 지난 12일 오후 7시44분에 우리는 체감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특이한 자연적인 요소를 신격화하여 숭배함은 물론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생활습관이 생길만큼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자연현상은 당시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고, 천둥과 벼락이 치고, 땅이 요동치는 모든 현상들이 신비롭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자연에 대해서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가 담겨져 있음을 알게 하여 자연의 현상들이 절대군주나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의 자존심과 평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한국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일이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地震)'이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빈번히 발생했던 '자연재해(自然災害)' 중의 하나가 지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5년 인천에 지진계가 설치되었고, 1978년 지진관측 이후 가장 큰 규모인 5.8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安全地帶)'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역사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지진은 고구려 유리명왕 21년(기원후 2년) 8월에 일어났다. 신라수도인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삼국사기 탈해니사금 8년(기원후 64년) 12월 지진이 일어난 것과 '혜공왕(惠恭王) 15년 (779년) 3월에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 라는 기록을 포함하여 총 48회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지진은 삼국시대 102회, 고려시대 169회가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 등 지진이 기록된 사료가 풍부하여 대략 1500회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지진은 오늘날과 같은 지역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경주는 신라천년의 역사도시다. 천년동안 많은 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읍을 유지하여왔고 또 역사를 이끌며 살아온 우리의 터전이었다.
앞으로도 지진은 더 일어나겠지만 지진에 대한 교육과 이해를 통해서 막연한 자연현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웃인 일본과 중국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지진만 지켜보았을 뿐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직접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심(安心)' 이 이번 지진으로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도리어 막연한 불안감을 얻게 되었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근 1년 동안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20건이나 일어났다고 하며, 지난 4월 구마모토현에서 일어난 지진은 규모 6.5 라고 한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인명 피해나 건물의 붕괴가 최소한으로 된 것은 대규모의 지진과 같은 재난에서 얻은 교훈을 철저한 실전적이고 반복적인 '안전훈련'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의 경주지진은 우리에게는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지진이 우리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큰 피해 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지진에 대한 '안전준비'가 부족한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더라면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지진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국민모두에게 용기와 위로를 드리며,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하루 빨리 완쾌되고 시설은 안전하게 복구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지진을 교훈으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인 안전대책에 대한 매뉴얼과 시스템이 관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갖추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자연재해로부터 더 안전한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일본 등 남의 나라의 일로만 여겼던 그 지진이 한반도 남부를 흔든다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핵 폭탄의 50 배 이상 위력을 가진 지진이 실제 지난 12일 오후 7시44분에 우리는 체감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특이한 자연적인 요소를 신격화하여 숭배함은 물론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생활습관이 생길만큼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자연현상은 당시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오묘한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고, 천둥과 벼락이 치고, 땅이 요동치는 모든 현상들이 신비롭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자연에 대해서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가 담겨져 있음을 알게 하여 자연의 현상들이 절대군주나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의 자존심과 평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한국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일이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地震)'이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빈번히 발생했던 '자연재해(自然災害)' 중의 하나가 지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5년 인천에 지진계가 설치되었고, 1978년 지진관측 이후 가장 큰 규모인 5.8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安全地帶)'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역사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지진은 고구려 유리명왕 21년(기원후 2년) 8월에 일어났다. 신라수도인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삼국사기 탈해니사금 8년(기원후 64년) 12월 지진이 일어난 것과 '혜공왕(惠恭王) 15년 (779년) 3월에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 라는 기록을 포함하여 총 48회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지진은 삼국시대 102회, 고려시대 169회가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 등 지진이 기록된 사료가 풍부하여 대략 1500회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지진은 오늘날과 같은 지역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경주는 신라천년의 역사도시다. 천년동안 많은 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읍을 유지하여왔고 또 역사를 이끌며 살아온 우리의 터전이었다.
앞으로도 지진은 더 일어나겠지만 지진에 대한 교육과 이해를 통해서 막연한 자연현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웃인 일본과 중국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동반한 지진만 지켜보았을 뿐 그러한 일이 우리에게 직접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심(安心)' 이 이번 지진으로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도리어 막연한 불안감을 얻게 되었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근 1년 동안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20건이나 일어났다고 하며, 지난 4월 구마모토현에서 일어난 지진은 규모 6.5 라고 한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인명 피해나 건물의 붕괴가 최소한으로 된 것은 대규모의 지진과 같은 재난에서 얻은 교훈을 철저한 실전적이고 반복적인 '안전훈련'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의 경주지진은 우리에게는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지진이 우리에게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큰 피해 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지진에 대한 '안전준비'가 부족한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더라면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지진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국민모두에게 용기와 위로를 드리며,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하루 빨리 완쾌되고 시설은 안전하게 복구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지진을 교훈으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인 안전대책에 대한 매뉴얼과 시스템이 관민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갖추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자연재해로부터 더 안전한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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