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은상작]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경주서 찾은 아름다운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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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작성일20-09-08 15:37본문
[경북신문=장성재기자] ↑↑ 경주 불국사 전경.
가출을 했다
2005년 10월의 어느 일요일, 수능을 한 달 앞둔 나는 가출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10시까지 학교를 가서 자습을 했겠지만 그날은 유독 아침부터 엄마와 신경전을 벌였다. 그 이유가 15년이 지난 지금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틀림없이 사소했을 것이다. 그렇게 잔뜩 뿔이 난 상태로 집을 나온 나는 예정대로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때마침 버스 종점은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이었으며, 우연히도 몇 달 동안 쓸 곳 없이 모아둔 돈을 가져 나와 지갑이 두둑했다. 말 그래도 당시의 나는 세상 어딜 떠나도 무섭지 않은 여고생이었다. 당시 여러 가지 겹친 우연들은 이상한 에너지를 띄며 나를 시외버스터미널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행선지들이 적힌 시간표들 사이에서 단박에 경주행 버스표를 샀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가본 적은 있어도 나 홀로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닌 곳을 벗어나본 적 없던 내게 경주는 그저 적당히 멀고 가까운 대다가 수학여행의 기억이 어렴풋이 자리한 최적의 장소였다. 티켓 발권까지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들뜬 마음에 주변 서점에서 하루키의 여행 수필집도 하나 샀다. 그렇게 가출 아닌 가출을 한 나는 문제집 사이에 하루키 수필집을 끼워 넣은 채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잔뜩 신이 났다. 내가 갔던 그 계절의 경주는, 이제껏 계절감이라고는 바뀌는 동/하복 교복으로만 체감하던 여고생에게 온전한 색의 산과 들을 선사하였다. 무엇보다 외딴 곳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은 나를 들뜨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가출을 한지 2시간여 만에 곧장 공중전화를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핸드폰이 없었던 나는 굳이 054 경북 지역번호로 전화를 하고 싶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은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너 대체 어디야?'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놀리듯 '경주지롱~'하곤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과연 당시의 우리 엄마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당장 한 달 뒤에 수능을 치러야 하는 딸이 갑자기 학교를 간다고 나가서는 뜬금없이 054 지역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대뜸 경주에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가출 같지 않은 가출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자 무작정 아무런 정보 없이 온 이 곳, 경주를 둘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촌스러운 여고생이라서 제일 먼저 '경주하면 그래도 불국사는 가줘야지'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불국사가 적힌 것만 보고 10번 버스에 올라탔다. 일요일 점심시간의 버스 안은 뜻밖에 사람이 없었다. 마치 버스를 전세 낸 것 마냥 뒷자리에 앉아서 텅 빈 버스를 보고 있으니 정말 내가 먼 곳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복잡한 내 고향과는 다른 어떤 이질감이 그제 서야 밀려왔다. 하지만 나와 버스 기사 아저씨 단둘만을 싣고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 확신했다.
'아,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이다.
내가 탄 버스는 당시 정말 아무 것도 없던 논과 밭을 달렸다. 가을의 노란 빛 가득한 논을 달리다보면 저 멀리 우뚝 솟은 첨성대가 보였고, 그러다 다시 달리면 어딘가 언덕으로 올라가 온갖 빛깔의 단풍길이 나타났다. 그 길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자유라는 것이 형체를 지닌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넘실거리는 태양을 따라 오롯하던 가을빛이 있던 그곳에서, 괜히 창문을 조금 열어 손바닥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닿는 바람들이, 그 바람들을 갈랐던 빛들로 하여금 나는 처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불국사는 때마침 수리 중(온전히 내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기에 정확하지 않다.)이었는지 입장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그게 섭섭하거나 하지 않았다. 때마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점점 짧아지는 해로 금방이라도 어둑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곧장 돌아가는 11번 버스를 타고(같은 10번 버스가 11번이 되었던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 날 일기를 썼던 것 또한 기억이 난다.) 나는 다시금 긴긴 도로를 달렸다. 저물어 가는 해로 인해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빛들은 내가 이전에 거쳐 온 그 길과는 또 다른 감상을 남겼다. 깊은 가을의 조용함이 얼마나 쓸쓸 한지, 하지만 그 쓸쓸함의 고요는 얼마나 차분한지를 말이다. 그저 유적지가 많은 수학여행지에 불과 했던 경주에서 나는 자연에게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야 말로 아주 우연히 하게 된 내 경주 여행의 목적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도 말이다.
나의 첫 나 홀로 경주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나를 엄마는 따로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나 역시나 괜한 죄책감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여전히 두근대고 있음을 느꼈다. 여전히 바깥 풍경에 미혹되어 정작 한 페이지도 펴보지 않았던 하루키의 책만이 덩그러니 내 가방 안에 들어 앉아있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좋은 곳이 가고 싶거나 마음이 속상할 때면 언제든 경주를 찾았다. 스무 살, 가장 친했던 친구와 함께 생일을 맞이하여 마침내 불국사를 다녀왔으며, 대학 졸업을 앞둔 당시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경주 여행을 계획해 놓곤 헤어져 나 혼자 정말 외롭게 그곳을 다시 찾은 적도 있었다. 그때의 가출 아닌 가출로 나는 꾸준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경주를 여행할 수 있었다. 봄날의 황룡사 벚꽃이 주는 아름다움도, 가을 밤 보문단지의 느긋함도, 한 겨울 눈 쌓인 그 조용하던 안압지도, 언제나 경주는 매 계절 내게 늘 새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곳이었으며 나의 마음의 안식과도 같은 곳이다.
나의 가출은 뜻밖의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은 삶이라는 긴 여행의 어느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좋은 것에서 오는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법, 나는 그것을 경주에서 배웠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가출을 했다
2005년 10월의 어느 일요일, 수능을 한 달 앞둔 나는 가출을 했다. 예정대로라면 10시까지 학교를 가서 자습을 했겠지만 그날은 유독 아침부터 엄마와 신경전을 벌였다. 그 이유가 15년이 지난 지금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틀림없이 사소했을 것이다. 그렇게 잔뜩 뿔이 난 상태로 집을 나온 나는 예정대로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때마침 버스 종점은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이었으며, 우연히도 몇 달 동안 쓸 곳 없이 모아둔 돈을 가져 나와 지갑이 두둑했다. 말 그래도 당시의 나는 세상 어딜 떠나도 무섭지 않은 여고생이었다. 당시 여러 가지 겹친 우연들은 이상한 에너지를 띄며 나를 시외버스터미널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행선지들이 적힌 시간표들 사이에서 단박에 경주행 버스표를 샀다.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가본 적은 있어도 나 홀로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닌 곳을 벗어나본 적 없던 내게 경주는 그저 적당히 멀고 가까운 대다가 수학여행의 기억이 어렴풋이 자리한 최적의 장소였다. 티켓 발권까지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들뜬 마음에 주변 서점에서 하루키의 여행 수필집도 하나 샀다. 그렇게 가출 아닌 가출을 한 나는 문제집 사이에 하루키 수필집을 끼워 넣은 채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는 잔뜩 신이 났다. 내가 갔던 그 계절의 경주는, 이제껏 계절감이라고는 바뀌는 동/하복 교복으로만 체감하던 여고생에게 온전한 색의 산과 들을 선사하였다. 무엇보다 외딴 곳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은 나를 들뜨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가출을 한지 2시간여 만에 곧장 공중전화를 달려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핸드폰이 없었던 나는 굳이 054 경북 지역번호로 전화를 하고 싶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은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너 대체 어디야?'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놀리듯 '경주지롱~'하곤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과연 당시의 우리 엄마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당장 한 달 뒤에 수능을 치러야 하는 딸이 갑자기 학교를 간다고 나가서는 뜬금없이 054 지역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대뜸 경주에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가출 같지 않은 가출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자 무작정 아무런 정보 없이 온 이 곳, 경주를 둘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촌스러운 여고생이라서 제일 먼저 '경주하면 그래도 불국사는 가줘야지'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불국사가 적힌 것만 보고 10번 버스에 올라탔다. 일요일 점심시간의 버스 안은 뜻밖에 사람이 없었다. 마치 버스를 전세 낸 것 마냥 뒷자리에 앉아서 텅 빈 버스를 보고 있으니 정말 내가 먼 곳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복잡한 내 고향과는 다른 어떤 이질감이 그제 서야 밀려왔다. 하지만 나와 버스 기사 아저씨 단둘만을 싣고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 확신했다.
'아,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이다.
내가 탄 버스는 당시 정말 아무 것도 없던 논과 밭을 달렸다. 가을의 노란 빛 가득한 논을 달리다보면 저 멀리 우뚝 솟은 첨성대가 보였고, 그러다 다시 달리면 어딘가 언덕으로 올라가 온갖 빛깔의 단풍길이 나타났다. 그 길에서 나는 말로만 듣던 자유라는 것이 형체를 지닌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넘실거리는 태양을 따라 오롯하던 가을빛이 있던 그곳에서, 괜히 창문을 조금 열어 손바닥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닿는 바람들이, 그 바람들을 갈랐던 빛들로 하여금 나는 처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불국사는 때마침 수리 중(온전히 내 기억에 의존하여 서술하기에 정확하지 않다.)이었는지 입장이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그게 섭섭하거나 하지 않았다. 때마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점점 짧아지는 해로 금방이라도 어둑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곧장 돌아가는 11번 버스를 타고(같은 10번 버스가 11번이 되었던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 날 일기를 썼던 것 또한 기억이 난다.) 나는 다시금 긴긴 도로를 달렸다. 저물어 가는 해로 인해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빛들은 내가 이전에 거쳐 온 그 길과는 또 다른 감상을 남겼다. 깊은 가을의 조용함이 얼마나 쓸쓸 한지, 하지만 그 쓸쓸함의 고요는 얼마나 차분한지를 말이다. 그저 유적지가 많은 수학여행지에 불과 했던 경주에서 나는 자연에게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에너지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야 말로 아주 우연히 하게 된 내 경주 여행의 목적임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도 말이다.
나의 첫 나 홀로 경주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나를 엄마는 따로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나 역시나 괜한 죄책감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여전히 두근대고 있음을 느꼈다. 여전히 바깥 풍경에 미혹되어 정작 한 페이지도 펴보지 않았던 하루키의 책만이 덩그러니 내 가방 안에 들어 앉아있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좋은 곳이 가고 싶거나 마음이 속상할 때면 언제든 경주를 찾았다. 스무 살, 가장 친했던 친구와 함께 생일을 맞이하여 마침내 불국사를 다녀왔으며, 대학 졸업을 앞둔 당시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경주 여행을 계획해 놓곤 헤어져 나 혼자 정말 외롭게 그곳을 다시 찾은 적도 있었다. 그때의 가출 아닌 가출로 나는 꾸준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경주를 여행할 수 있었다. 봄날의 황룡사 벚꽃이 주는 아름다움도, 가을 밤 보문단지의 느긋함도, 한 겨울 눈 쌓인 그 조용하던 안압지도, 언제나 경주는 매 계절 내게 늘 새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곳이었으며 나의 마음의 안식과도 같은 곳이다.
나의 가출은 뜻밖의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은 삶이라는 긴 여행의 어느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좋은 것에서 오는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법, 나는 그것을 경주에서 배웠다.
장성재 blowpa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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