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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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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11-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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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점식시간이었다. 식당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노인 한 분이 슬며시 얼굴만 디밀었다. "여기 식당 맞는기요" 주인을 대신해 내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노인은 쭈뼛거리며 들어와 문과 가장 가까운 빈자리에 앉았다. 첫마디에 추어탕을 주문하면서 눈은 식당 안을 살핀다.
 
  바쁜 주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추어탕이 없다는 답을 한다. 노인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전에 와서 먹었는데 그 집이 아닌가?" 다시 솟는 의구심으로 의자 끝에 걸쳤던 엉덩이에 모가 났다.
 
  잘못 오신 것이 아니라 오늘은 추어탕이 없다는 주인의 답이 이어졌다. 대신 어탕이 있다며 권한다. 어탕이 무엇이냐며 처음 들어본다는 듯 겁을 낸다. 마음은 벌써 반이나 밖으로 나갔다.
 
  내가 거들어 추어탕과 비슷하다며 자셔보시라 하자 그건 얼마인지 묻는다. 주인이 벽에 붙은 메뉴판을 가리키며 추어탕보다 천원 더 비싸지만 추어탕 값만 받을테니 걱정마시라는 말에는 나도 돈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마침내 주문이 이루어졌다.
 
  왜 혼자이신가? 누군가와 동행이었다면 저리 불편하고 낯설어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형편상 자제분과는 따로 산다고 하지만 가까운 이웃사촌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저 연배 어르신들은 다닐 때 둘이거나 여럿이다. 국밥 한 그릇씩을 먹고 서로 계산하겠다고 아옹이는 정겨움은 흔히 보는 장면이다. 오늘 노인은 무슨 연유로 혼자이신가 궁금증이 일었다.
 
  노인의 차림은 정갈하다. 분홍꽃 바탕에 포인트로 반짝이가 박힌 블라우스가 곱다. 발에는 가벼운 단화가 신겼고 양말은 희다. 젊은 날의 기록같은 손이 보인다. 마디가 불거진 손가락에 금반지 하나 헐렁하다. 손톱 밑은 하얗다. 노년이 금반지를 낀 손만큼은 여유로워 보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탕을 기다리는 그 사이에도 노인의 어색한 표정은 여전하였다.
 
  작은 아이가 큰 식탁을 차지한 듯 노인의 턱은 식탁과 같은 높이다. 원래도 높지 않은 키였겠으나 줄어든 세월은 더 길어서인가 싶다. 건너편에 마주앉은 내 눈과도 서너 번 마주쳤다.
 
  내가 멋쩍어 웃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나이가 여든여덟인데 집에 가면 냉장고에 먹을 것이 그득하다. 아들이 소고기랑 갈치랑 사다 넣어놓아도 혼자 먹으려니 맛이 없다" 까다로운 당신의 혀를 탓하며 추어탕이 먹고 싶어 나왔다며 양해를 구한다. 딱히 누구라기보다는 자신을 납득시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고는 맥락없이 "죽지않는 것을 우짜노" 아니라 부정하기도, 맞장구로 수긍할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눈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노인의 젊은 날에는 미꾸라지가 흔했을 것이다. 특히 벼꽃이 필 때부터 살이 오른 미꾸라지로 끓여낸 국은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명절에나 먹어보던 육고기나 장날 저녁상에 냄새를 피우던 바다고기가 감질나게 하는 맛이라면 추어탕은 큰 솥에 끓여내던 어우러지는 맛이다. 노인은 추어탕이라는 말보다는 미꾸라지국이나 시락국으로 불렸던 맛이 그리운 것은 아닐까.
 
  사람이 백 살까지 살기가 소원이던 때가 그리 멀지않다. 바램대로 수명은 길어졌다. 백세를 넘겨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어르신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세상의 풍습은 바뀌었다.
 
  대가족은 흔치않다. 뜻한 바는 아니나 어쩌다보면 혼자 남겨지게 된다. 노인은 오늘 추어탕이 먹고 싶다기보다 사람들이 고팠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몹시도 보고싶은 날이거나 너무 외로워 나온 것은 아닐까?
 
  국물이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내 앞에 놓여졌다. 나는 천천히 들깨 가루 두 숟가락을 넣어 온도를 낮추고 제피 한 꼬집으로 비린내를 잡았다. 밥을 말고 들어먹는 접시에 수제비와 건더기를 건져 식혔다.
 
  그러면서 곁들여진 겉절이와 깍두기가 맵지 않고 맛있다는 헛말까지 늘였다. 노인이 보고 따라하기를 바라서지만 사실은 어색한 내 마음을 떨치려는 행동이었다.
 
  앞으로 인간의 수명은 더 늘어난다고 한다. 내가 노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의 내 모습은 어떨까? 어쩜 노인보다 더 긴 날을 혼자여야할 것이다. 저렇게 익숙치 않은 곳을 찾아 외떨어진 모습으로 앉았을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손님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나오며 노인에게 맛나게 들고 가시라 인사를 했다. 아쉬운 듯 노인이 쳐다본다. 밀물때같은 점심시간에 온전히 한 자리를 차지한 노인의 존재가 많이 도드라지지않기를 바랄뿐이다. 노인이 나의, 우리의 멀지않은 미래만 같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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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