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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생활칼럼] 낙타가 열었던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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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식 작성일21-05-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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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혜식출세의 덕목으론 처세가 으뜸이다. 한 때 처세 방법 중 하나로 '와이료蛙餌料'를 꼽기도 했다. 이것을 써서 안 되는 일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줄' 과 '빽' 에 와이료가 가미되면 바늘귀로도 낙타가 쉽사리 통과 한 적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정 농단도 이런 연유로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일개 평범한 여인이 대통령과 연줄을 등에 업고 인人의 장막을 친 후 벌인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났잖은가. 일명 '와이료' 및 '줄', '빽'이 세 가지가 세상 모든 좁은 문을 무사히 통하게 했다면 지나칠까. 언젠가 어느 재벌 2세의 팔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러자 그는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하긴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의 위력은 상당하다. 이 탓에 세상은 의義의 원리가 이득利得에 의하여 가려진 지 오래다. 경험에 의하면 처세를 잘 하는 사람은 성공도 매우 빠르다. 강자다 싶으면 무조건 그 앞에서 손 비비고, 무릎 꿇고 심지어는 충견 노릇도 마다않는다.
   지금도 금력金力이 법치 위에 군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를 대하노라면 왠지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낀다. 그야말로 줄 없고 빽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심성이 정의로워도 제대로 빛을 못 보잖은가. 이런 일은 요즘도 도처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게 사회적 문제다.
   며칠 전 동네 세탁소에서 겪은 일이다. 도수 높은 돋보기를 쓴 세탁소 아저씨가 재봉틀을 돌리며 나를 맞는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지 못하고 나보고 잠깐만 기다리란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았으니 양심상 드라이크리닝 만 해 줄 수 없어 터진 솔기를 손봐주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셔유" 하면서 검정색 남성 바지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살핀다. 나는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았다는 아저씨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 말에 세탁 비를 두 배나 받은 연유를 물어봤다. 그러자 세탁소 아저씨는 " 이 바지를 맡긴 손님은 저희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 제가 수고한다며 항상 세탁 비를 두 배나 주곤 한답니다. '와이료'를 받았으니 여느 손님보다 제가 신경을 더 많이 써야지유"라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세탁소 아저씨 입을 통해 '와이료'란 말을 듣는다. '와이료'라는 말을 듣노라니 꾀꼬리와 뜸부기 이야기가 생각난다. 꾀꼬리와 뜸부기가 서로 자기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다투다가 이웃에 사는 두루미에게 심판을 청했다. 판정은 삼 일 후에 하기로 했다. 뜸부기는 꾀꼬리에게 지기 싫어서 두루미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날마다 꾀꼬리 모르게 바쳤다. 결과는 뻔했다. 개구리를 뇌물로 바친 뜸부기가 꾀꼬리보다 목소리가 더 좋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미있는 우화다. 세탁소 주인이 말하는 '와이료'란 말은 이 우화와는 걸맞지 않다. 그의 순박한 인품으로 미뤄봐서 그렇다. 손님이 더 준 세탁 비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기에 그에 준하는 배려를 손님에게 되돌려준다는 의미가 아닌가.
   지난날 '와이료'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성행한 적이 있다. 사회의 혼탁과 부정을 부추기는 이 '와이료'는 그야말로 모든 문을 여는 만능열쇠로 작용했다. 어떤 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쉽사리 일이 해결이 안 될 때, 혹은 자신의 출세나 명예를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 쓰는 돈, 물질이 곧 '와이료'다.
    이 와이료 탓에 정작 탁월한 역량을 지닌 사람이 불이익을 받았다. 또한 피땀 흘려 노력한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일은 부지기수였으니…. 지난 세월 세상의 탁류를 이룬 주류가 바로 이것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줄을 잘 서야 성공도 거머쥐었다. 든든한 빽으로 둔갑한 동아줄은 때론 생명 줄이기도 했다.
   '돈 때문에'라는 유행가가 이를 풍자하는 뜻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노랫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돈 때문에 속상하고 돈 때문에 기분 좋고/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 돈 때문에 출세하고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유혹하나/ <후렴> 사랑도 의리도 돈에 얽매여< 중략>-'
   하긴 사랑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요즘 세태 아니던가. 성실히 땀 흘리고 받는 대가는 신성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인면수심이 되고, 돈 때문에 양심을 속이고, 돈의 힘으로 권력과 명예를 얻는다면 떳떳하지 못하다. 적어도 양식을 제대로 갖춘 자라면 물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수필가 김혜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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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