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민 제안 통해 `막걸리 빚기` 신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페이지 정보
이상문 작성일21-06-15 18:38본문
[경북신문=이상문기자] 국민이 찾아서 제안한 유산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지정된 '막걸리 빚기'는 2019년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국가무형문화재를 제안하여 지정되는 첫 사례다.
문화재청은 적극행정 사업으로 '국민과 함께 빚는 무형문화재, 우리의 막걸리'를 선정됐다.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2020년 중앙우수제안 경진대회에서 정부포상(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지정 대상은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 포괄했다.
일반 쌀 막걸리는 쌀을 씻어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 간 발효시켜 체에 거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걸리의 '막'은 '바로 지금', '바로 그때'와 '걸리'는 '거르다'라는 뜻으로 그 명칭이 순우리말일 뿐만 아니라 이름 자체에서도 술을 만드는 방식과 그 특징이 드러난다.
막걸리는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뤄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미온', '지주', '료예'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확인된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 등의 용어가 확인된다.
조선 시대 '춘향전', '광재물보'에서는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 각종 조리서에도 탁한 형태 막걸리로 즐겼을 법한 술들이 있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의 대명사가 됐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로 기능했다.
예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 빠지지 않던 막걸리는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로서 건물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제물로 올릴 정도로 관련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상문 iou518@naver.com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지정된 '막걸리 빚기'는 2019년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국가무형문화재를 제안하여 지정되는 첫 사례다.
문화재청은 적극행정 사업으로 '국민과 함께 빚는 무형문화재, 우리의 막걸리'를 선정됐다.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2020년 중앙우수제안 경진대회에서 정부포상(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지정 대상은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 포괄했다.
일반 쌀 막걸리는 쌀을 씻어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 간 발효시켜 체에 거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걸리의 '막'은 '바로 지금', '바로 그때'와 '걸리'는 '거르다'라는 뜻으로 그 명칭이 순우리말일 뿐만 아니라 이름 자체에서도 술을 만드는 방식과 그 특징이 드러난다.
막걸리는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뤄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미온', '지주', '료예'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확인된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 등의 용어가 확인된다.
조선 시대 '춘향전', '광재물보'에서는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 각종 조리서에도 탁한 형태 막걸리로 즐겼을 법한 술들이 있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의 대명사가 됐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로 기능했다.
예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 빠지지 않던 막걸리는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로서 건물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제물로 올릴 정도로 관련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상문 iou518@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